영도리서치 플레이스랩 프로젝트 영도
미워하다 좋아진 싫어하다 사랑하게 된 섬. 이것은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옛 길 위에서 본 섬의 시간. ‘노이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존재들. 그들이 섬 밖으로 나간 것을 보지 못했다. 바다에 닿지도 않았는데 바다를 닮은 구석. 정작 남아 있는 건 없다. 한 걸음 물러난다는 마음으로. 그림자가 끊어진다. 목적지가 있다면 쉬는 것은 멈춘 것이 아닙니다. 소소하고 시시하더라도 나는 늑대이지 말아야지. 경계는 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살던 그곳이 더이상 그곳이 아니게 되는 것.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김수진

영도 중리가 본적이나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깡다구가 있고, 운동을 잘하여 테니스 선수의 길을 걸었으나, 여의치 않아 그만두고 현재까지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고려대 환경계획 및 조경학을 전공(Ph. D.)하며, 한국 전통정원의 오래된 미래를 보며, 듣고, 느꼈다. 졸업 후에는 조경학자의 삶을 살고자 하였으나 그것 역시 여의치 않았다.

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 경관사업부에 입사하여 국내 Big Project 등을 수행하였지만,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입사 5년 만에 사표를 썼다. 개인적으로 인생에 있어 가장 현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방문학자로 영국에 거주하며, 인접한 세계 유수의 정원들을 답사하며, 기록하였다. 특히 서남아시아나 북아프리카 그리고 북부인도의 이슬람정원에 흥미와 관심이 있어 단행본을 쓰고 있지만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귀국하여 영국에서 유학하며 느꼈던 영국 사람들의 정원문화를 부산 영도에 이식하고자 ‘리케이온’이라는 카페를 열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원아카데미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영도 봉래동 마을주민 그리고 리케이온 정원아카데미 수강생과 함께 봉래동 적산가옥 정원과 검사집 정원 등 마을 정원을 조성하였다. 현재에는 경암교육문화재단의 요청으로 경남 양산 사송의 8만 5천평 부지를 경암원이라는 정원 조성 기본계획을 총괄하며 재미지고 흥미로운 삶을 지속하고 있다.

Ⅰ. 개요

과거 섬은 변지(邊地), 원악도(遠惡島), 낙도(落島), 유배지와 같은 폐쇄적이고 낙후한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섬은 원래 복잡한 사회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서정적인 장소로 여겨졌고, 때때로 상상의 로맨틱한 면도 지녔으며,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진취적인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섬은 이상향이자 풍성한 낙원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서양의 대항해시대에는 섬을 신세계, 즉 유토피아로서 인식하고 국가 동력으로 새로운 섬을 찾아 해양을 누리기도 하였고, 식물소재인 허브와 같은 향신료는 주된 유토피아와 같은 낙원에서 얻을 수 있어 무역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는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시황제의 명을 받들고 전설의 불로초를 찾아 동해로 떠난 서복은 발해 바다 가운데 있는 불사의 섬(봉래, 영주, 방장)을 찾고자 한 것은 섬에 신선이 산다는 신선사상에 기인한다. 홍길동전의 율도(栗島)라는 섬(율도국)과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옥갑야화에서 허생이 말한 섬 일화는 한국적 이상향, 즉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유토피아를 표현하며 그 소재들이 주로 허브(향신료), 불로초, 밤나무(율도), 복숭아나무(도원) 등의 식물소재와 관련된 서구의 낙원 또는 천국이미지 정원(Garden)과 유사하다.
Ⅱ. 동·서양의 섬과 정원

1. 서양의 유토피아적 상상과 정원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은 태초 인간이 거주했던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순수의 동산을 묘사하는 이야기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에덴동산, 샹그릴라, 샴발라, 아틀란티스, 레무리아, 엘리지언 필드, 이아루, 생명의 나무 등 이름도 갖가지이다. 무엇이라 불리던 간에 그 생명의 동산은 하늘과 땅(무형과 유형) 사이의 신비로운 결합을 상징한다. 그것은 실재하던지, 상상 속에 있던 간에 지리적 장소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저급한 요소(이를테면 본능)가 신성의 고귀한 요소(사랑과 지혜)와 결합되는 정신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험소설인 ‘보물섬’과 같은 소재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면서 사람들의 이상을 자극하기도 한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장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토포스(topos)라는 실사와 양질을 뜻하는 접두어 ‘eu’와 부정을 나타내는 ‘ou’라는 두 개의 접두사가 합성된 단어로서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유토피아’는 어떤 점에서는 ‘좋은 장소’, ‘행복의 장소’를 뜻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곳’,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하면서 실제 지리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살기에는 너무나 좋은 곳이지만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섬은 언제부터, 유토피아로 인식되었을까? 서양의 문명이 그리스 크레타(Crete)와 에게(Aegea)의 군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과 르네상스 유럽인들이 모범으로 숭앙한 것이 그리스의 철학이라는 관계를 들추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고, 서양인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꿈의 섬, 아틀란티스 역시 그리스의 작은 섬 산토리니(Ancient Thera)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섬이 가진 유토피아적 상상의 일면 일 것이다. 또한 산토리니 테라섬의 아크로티리(Akrotiri) 유적은 고대 유적의 발굴은 상상력을 더욱 현실성 있게 한다.

하지만, 사막문명의 모태가 되는 아브라함계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낙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상상했던 이상향과 중세 이후 대항해시대에 욕망했던 서양인들의 유토피아적 상상력과는 차이가 있다. 더욱이 서양문명의 모본이 되는 낙원의 상상력은 분명한 에덴과 파라다이스라는 절대적인 가치기준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지만, 사막문명이 창의하던 문명의 모본에서 섬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파라다이스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파라다이소스(Paradeisos)에서 연원한 의미이지만 고대 페르시아 정원을 일컬어 붙여진 말이기도 한 것을 보면, 오히려 섬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실체보다는 실존하는 사분원(Chahar Bagh, four Gardens)의 정원(Garden)이 오히려 현실적인 낙원의 모습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또한 성경의 창세기에서 언급하는 ‘에덴동산(Garden of Eden)’의 모습도 현존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정원의 모습으로 양상 된 것을 볼 때 서양인들에게 정원은 단순히 녹음을 뜻하는 의미가 아니라 천국을 상징하는 낙원, 즉 이상향의 모습으로 이해되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상 정원사들은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의도했으며, 그 형태는 시대와 장소, 부와 지식에 따라 다르게 취해졌고, 또한 정원은 상징성과 주요 형이상학적 의문을 풀어주는 장소가 되어 왔음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2. 동양의 이상향과 정원 그리고 섬

중국, 일본, 한국 동양 삼국의 섬은 천계(天界), 신선계(神仙界) 그리고 무릉도원(武陵桃源) 등을 상징하며, 많은 정원유적에서 섬을 모티브로 이상향을 표현하는 것들을 확인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진나라 아방궁 내 상림원의 난지는 진시황 31년 원림 속에 못을 파고 섬을 쌓아 바다 속 선산(仙山)의 형상을 모방하여 축조하였으며, 삼진기(三秦記)에는 “진시황은 위수(渭水)에서 물을 끌어들여 동서 200리, 남북 20리에 이르는 장지(長池)를 만들고, 그 속에 섬을 쌓아 봉래산을 만들었으며, 못가에 돌을 다듬어 길이가 200장이나 되는 고래(鯨)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에 기록된 일화에 나타난 것처럼 삼신산을 찾지 못하고, 불로초를 가져오는데 실패하자 진시황은 전설 중의 봉래선경을 자신의 궁원에 축조하게 하는데, 이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원림 중에 바다 신선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후 많은 황실정원에서 진시황의 이상향을 모방하여 3개의 섬을 축조하고 신선계를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장생불사하며, 신선세계를 동경하는 이상향의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며, 중국의 대표적 정원인 소주의 졸정원(중간영역)과 승덕의 피서산장 지원(여의호)에 만든 3개의 섬, 역시 신선계를 상징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소주의 사자림 중도의 석가산과 유원의 소봉래 역시 섬이라는 소재에 신선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 역시 많은 고대 정원에서 못을 파고 중심에 섬(봉래산을 상징)을 조성하는 방식의 정원유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니조성 원지와 수학원 이궁의 욕옥지에 조성된 3개의 섬 역시 신선세계를 반영한 조영자의 이상향과 관련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원인 용안사 방장정원은 흰 모래와 바위를 이용하여 바다와 섬을 표현하고 있는데, 선(禪)의 이상향을 묘사하고 있지만, 바다와 섬이라는 소재가 상징적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일본정원에서 섬과 바다가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내포한다. 특히 정원조영 기법 중 해안경관을 묘사한 쓰마하(州浜), 데시마(出島), 아리소(荒磯) 등은 섬으로 구성된 일본 영토 자체를 이상적인 경관으로 표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아울러 치센(池泉) 정원에 시마(島)를 표현하는 것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신선세계 즉, 봉래, 영주, 방장의 삼신산을 상징한다. 이렇듯 일본 역시 중국과 함께 정원에 섬이라는 경관을 조성하여 이상향을 상징하며 동경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나라는 백제 진사왕7년(391) 정원에 궁실을 중수하고,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기이한 짐승과 화초를 길렀다는 내용과 무왕 35년 3월에 궁성 남에 못을 파고 물을 20여 리나 끌어들였으며 사방 (못의)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속에 섬을 만들어서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정원유적기록에서 신선사상을 주제로 정원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의 경주의 월지(안압지)와 광한루 지원, 경복궁 지원 등에서도 선계(仙界)를 모티브로 섬이라는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대표적인 한국인의 이상향을 표현한 그림인데, 일반적으로 깊은 산속의 신선이 살고 있는 도원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는 것으로 미술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지만, 그림에 묘사된 기암괴석의 지형, 바다와 같은 물의 요소 등의 표현을 보면, 마치 해안의 섬 경관과도 닮아 있다.

한편,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성된 선비들의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든 것(方池圓島)은 조선 선비들이 자연을 대유(代喩)하고자 한 전통적인 우주관에서 천원지방을 이해하고, 더욱이 섬을 모티브로 하는 이상적인 사상이 충분히 공감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조선중기의 고산 윤선도가 조성한 보길도 부용동은 상상의 공간으로 섬을 원지에 조성한 것이 아니라 실체적 이상향으로 섬을 찾아 그가 생각하는 별천지를 조성하였다. 이는 보편적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신의 근거지나 경영지에 조성한 별서와 별업과 같은 정원과는 차별적이며 선도적인 차원에서 섬 정원의 이상향을 구현한 것이다. 특히 섬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에 정착하며 실체적 이상향을 조성한 것은 섬과 정원 그리고 이상향이라는 교집합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Ⅲ. 영도에 담긴 정원사적 상상력

1. 봉래(蓬萊)는 무산(巫山)이다.

시쳇말로 영도는 부산에서 기(氣) 좀 받는 곳이기도 하다. 영도 주민은 대부분 느끼겠지만 비교적 많은 절집과 무당집, 기도터 등의 많은 종교시설이 있는 것은 우연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봉래는 상징적인 의미로 신선사상의 깃든 장소인데, 신선은 불로불사(不老不死)한 사람을 뜻하며, 신선과 무당은 민간 신앙적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국조인 단군할아버지가 군장에서 물러나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며, 전국의 이름난 산신각에는 산신, 즉 단군할아버지를 모시며, 산신도에는 산신 이외에도 산의 주인인 호랑이와 불로장생을 나타내는 영물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산신은 호랑이를 고양이 다루듯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봉래는 쑥과 명아주가 많은 곳을 지칭하기도 한다. 아마도 쑥과 명아주는 마늘과 더불어 짐승이 미물을 탈피하고 인간이 되는 영생불사의 명약(herbal plant)으로 인지되었을 것이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의 이야기와 쑥 등은 전래동화 속 이야기일 수만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개요에서처럼 유토피아적인 이상적인 공간에는 늘 식물소재가 포함되어 있는데, 영도의 봉래산은 ‘봉래’라는 명칭에서 자생적으로 쑥과 명아주라는 식물소재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 봉래산(절영산)은 과거 고갈산으로 불렸다. 그 일체의 침탈 이전에는 민간에서는 산의 모양이 무당의 고깔을 닮았기에 고깔산으로 불렀다고 이해하고 있다. 아마도 절영도에 흔했던 기도터 등에 무당이나 선승들이 고깔을 쓰고 자연스럽게 왕래했던 것과 원추형의 지형적인 형상까지 함께 의미를 내포하였을 것이다.

또한, ‘절영’은 그림자(影)가 끊어진다(絶)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절영에서 ‘영(影)’을 파자하면 ‘경(景=日+京) + 삼(彡)’이 나타나는데, 풀이 우거진(彡) 높은 언덕(京)위에 해(日)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지에서 보면, 남쪽에 위치한 원추형의 절영도 위로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기에 절영이라 이름 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결국 ‘절영’이라는 의미 역시 원추형의 고깔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히려 민간에서는 한자어인 ‘절영산’ 이라는 용어보다 고깔산, 고갈산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조도(朝島)를 아치섬으로 부르고, 생도(生島)를 주전자섬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고깔산의 의미에 무당의 기도산, 즉 무산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산의 모양이 무당이 쓰는 고깔을 닮았기에 고깔산이라 부르는 것은 무당 무(巫)자를 써서 ‘무산’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무산에는 봉우리가 12개가 있기에 ‘무산십이봉’이라 부르고, 전통정원 소재로 왕왕 등장한다. 일예로 경주의 월지(정원) 연못 안에 봉래, 영주, 방장의 세 섬을 만들고 흙을 쌓아 ‘무산십이봉’을 조성했다.
그림 1. 중리산에서 바라본 영산, 봉래
2. 왕의 정원, 절영도

동양의 정원을 칭할 때, 크게 원(園), 유(囿), 포(圃) 3가지를 말한다. 원은 수목과 과수가 심겨진 곳을, 유는 금수를 기르는 수렵원과 동물원을 말하며, 포는 채마밭과 같은 텃밭을 일컫는다.

절영도는 과거 절영마를 기르던 목마장이 있던 곳으로 이는 고대정원의 유형 중 유(囿)를 의미하는데, 서양의 파크(park)와 같은 의미이다. 한나라 이후에는 유를 대신해서 원(苑)을 쓰기도 한다. 조선시대 창덕궁 후원에 있는 왕의 정원을 비원(祕苑)이라 부르는 것은 일반적인 원(園)의 의미보다는 유(囿)의 의미가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태종이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태종이 수도 경주(월성)에서 동래 절영도까지 방문한 것은 동래온천 이외에도 절영도 일원이 왕의 수렵원이자 피서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절영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있어 호랑이와 같은 짐승과 방어적인 측면에서 안전하고, 육지와 가까워 접도하기 편하고, 기암괴석이 있어 경관이 수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왕실정원은 영유(靈囿), 영대(靈臺), 영소(靈沼)가 있는데, 절영목마장이 영유요, 태종대가 영대이며, 신령스런 팔준마가 마셨다던 감지(甘池) 영소의 의미가 충분하기에 절영도 동삼동 일원은 신라시대 왕실정원의 정원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불교를 국교로 한 정원에서는 정원적 요소로 그림자를 활용하는 영지(影池)가 있는데, 크게 산이 못에 비치는 산영지와 탑이 비치는 탑영지, 불상이 비치는 불영지가 있다. 탑과 불상은 불교의 존숭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고, 산은 불교가 토착화 하는 과정에서 숭상된 요소로 민간신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못(지당)은 주로 알모양의 난형으로 표현되고, 월궁(月宮)을 뜻하기도 한다.

결국 바다에 비친 (절)영산(影山)의 의미는 광의적 의미에서 지당 보다는 용왕님이 계신 해궁(海宮)에 비친 신령스런 산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는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림 2. 봉래산 상공은 바다의 용궁과 같다.
3. 신라수도 경주 월지와 왕의 정원 절영도

신라의 수도는 현재는 경주라 부르지만 과거에는 월성이라 불렀다. 월성은 달의 도시를 뜻하기에 음과 양중 음을 뜻하기도 한다. 월성의 정원은 월지라 부르는데, 월지에는 봉래, 영주, 방장이라는 세 개의 섬이 있다. 또한 무산십이봉은 못 주변에 조성된 가산으로 선녀가 살고 있는 신선계를 표현하고 있다.

절영은 앞서 언급하였지만 영(影)은 ‘경(景=日+京) + 삼(彡)’이 나타난다. 해가 있는 양의 도시이자, 절영은 고깔은 쓴 무당의 산, 즉 무산이다. 절영도는 조영된 정원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상이다. 해서 정원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보다는 자연 소재를 각각의 경관에 이름 붙임으로써 정원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림 3. 경주 월지와 영도는 음(월)과 양(해)의 의미가 있다.
그림 4. 해와 달은 음양을 상징하며, 특히 빛은 신의 선물이자 절영도원의 근원이다.
Ⅳ. 유토피아적 정원, 절영도원(絶影島+苑 = 絶影桃苑)

1. 절영도원의 의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는 신비한 목걸이가 밝게 빛나면 구름너머 전설의 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천공의 성은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표상한 것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천국과 낙원 또는 극락을 말한다. 결국 라퓨타는 인간에 의한 만들어진 실체이자, 상상의 정원을 표현한다.

영도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 섬의 상징적 의미와 태종의 정원, 섬이 가지는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배경으로 고깔산 즉, 봉래산 상공에 떠 있는 절영도원이라는 상상의 정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절영도원이라 이름 한 것은 절영도의 정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원을 표현할 때, 원(園)이라는 한자를 쓰다. 한편, 섬(島, 嶼)이 가지고 있는 장소적 특징이 바다로 둘러있는 장소이기에 원(園)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절영도는 수렵원, 즉 왕의 정원이기에, 원을 나라동산 원(苑)으로 고쳐 쓰고자 한다. 즉, 절영도원은 시, 공간적으로 영도에 조성되었던 왕의 정원(gar+eden)과 동일한 시계의 축을 이루는 천상의 정원, 즉 에덴(e-den)이다.

절영도원의 조성 시기는 하늘과 땅이 창조되고,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할 때, 동쪽의 동산을 일구어,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온갖 나무를 그 땅에 자라게 하였고,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도원(桃園)은 선계를 뜻하는 도교적 용어로 동양의 이상향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몽유도원이 있다. 따라서 절영도원은 서양의 에덴(Eden)과 동양의 도원(桃園)이 결합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태곳적 전설로 남겨진 절영도원이 이야기는 과거 인간과 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적에 만들어진 상상의 정원이다.
그림 5. 신선동 한 사찰에 게시된 ‘세계종교한뿌리연구원 현판’
2. 천공의 섬, 절영도원으로 이르는 길

천공의 정원, 절영도원으로 이르는 길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첫째 흰여울의 좁은 소로를 지나, 드넓은 목장에 다다를 수 있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소들을 방목하며, 피리 부는 도인들이 나귀를 타며, 유유자적한 삶을 지향하며 도법자연(道法自然)을 실천한다. 이곳은 물과 음식이 풍족하여 행복한 태평성대이자, 인간세계의 이상향이다. 그곳을 지나면, 상록숲을 마주 할 수 있는데, 꼬불꼬불 복잡한 숲길을 따라 봉래의 정상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세계와 이상세계를 경계하는 성속(聖俗)의 포탈게이트(Portal Gate)를 통과해야 한다.

봉래의 의미인 쑥(蓬)과 명아주(萊)로 만든 선단(仙丹)을 먹지 못하면 눈앞에 포탈(Portal)을 두고도 찾을 수 없는데, 포탈게이트 주변에는 과거 선인(仙人)들에 의해 표식 된 돌탑이 서낭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만, 일정의 심신 수련과정을 거친 내공이 있질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근래에 와서 돌탑은 신앙보다는 향토경관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방치되어 있지만, 과거 서낭은 서민들에게 종교와 같은 강한 믿음을 반영한다. 더욱이 돌탑은 산신 등이 발현한 신앙적인 측면이 강했기에 주술적 의미가 강했고, 특정의 토속적인 믿음이 없으면 신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때때로 해와 달이 만나는 신성한 날에는 금줄로 결계를 민간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가 하면, 영물인 솟대를 세워 신성함을 더욱 표출하기도 한다.

결국 봉래에서 만난 돌탑은 천공의 성, 절영도원에 이르는 성스러운 시작, 즉 통과의례의 장소이자, 깨우침의 장소이기도 하다. 선약을 먹고 길 떠날 채비를 하면 깃털처럼 가볍게 천공에 있는 상상의 절영도원에 다다르게 된다.

그림 6. 양측의 돌탑은 특정시기가 되면 선계로 이르는 포탈게이트가 된다.
또한, 적정수준의 내공이 있질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신선동의 고찰에서 수행하는 신선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고찰 주변에는 다원(茶園)이 펼쳐져 전통경관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데, 신선은 인간의 모습으로 고승처럼 변신하고 있지만, 사실은 봉래를 지키는 봉래산신이다. 직접 재배한 구증구포의 약선차(藥仙茶)를 얻어 마시면, 몸이 구름처럼 가벼워 나비처럼 날 수 있는데,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림 7. 신선동 한 사찰의 다원
그림 8. 수도승이나 신선이다
두 번째로 오랫동안 잠자고 있는 청학을 깨워야 한다. 청학은 동천(洞天)에 살고 있는 신령스런 동물로서 100여년 전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탈할 언젠가부터 시끄럽고 복잡한 청학동을 벗어나 한적한 동삼동 중리해안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호국의 신물인 청학은 사실 국난에도 유유자적한 삶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선인에게 내쳐졌고, 설상가상으로 지난 1950년, 남북의 지축과 천지개벽이 흔들릴 때 왼쪽 날개를 잃었다. 다행히 몇 해 전 봉래산의 선인이 중리일대를 소요하다 옛 전설의 청학을 발견하고는 왼쪽 날개를 신초(神草)인 풀고사리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청학 위로 무거운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 쉽게 비상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신비한 목걸이가 밝게 빛나고 구름너머 세상이 열릴 시기가 오면 청학 역시 자유로이 날아 천공의 절영도원에 이를 수 있다.

그림 9. 중리해변에 잠자고 있는 청학.
풀고사리는 쉽게 관찰하지 못하는 고사리인데, ‘풀+고사리’ 이름처럼 풀로 대변되는 민초들이 주나라 ‘백이숙제’와 같은 충성스런 마음으로 뭉쳐야 채취할 수 있다. 국난극복에 소홀히 한 청학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고사리가 필요하다.

풀고사리는 길이도 1미터 이상 되는 크기로 일반적인 고사리보다는 모양이 확연이 차이가 있는데, 마치 새의 날개 모양으로 생겼다. 전설에 따르면 중리산 일원에 군락지가 있다고 한다.
그림 10. 풀고사리를 날개를 치유한다.
세 번째는 배 병원, 깡깡이 수리조선소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일제의 만행이 있던 1933년 부산조선철공조합 조선공연습소 개설과 함께 구라파에서 신기술로 배를 하늘로 띄우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후 외부에는 수리조선소라는 이름보다는 배 병원이란 괴이한 이름으로 홍보하여 은밀하게 하늘을 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간헌적으로 날아 물 밖 지상으로 안착 할 순 있지만, 천공에 이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시타(여주인공)의 신비한 목걸이가 밝게 빛날 때 대지의 기운과 천상이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 비행선의 새로운 동력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1. 깡깡이 수리조선소에서는 배를 비행선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네 번째, 중리의 역참에서 절영마를 타고 갈 수 있다.

절영도원으로 향하는 길 중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단연 절영마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절영마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록된 역사에서는 신라로 추정하지만, 사실 절영마는 서역의 페르시아종과 북부초원종이 DNA가 교배된 당시 최고의 생명공학 기술로 생산된 최첨단 무기였다. 아마도 신라왕실을 상징하던 ‘천마(天馬)’는 절영마 일 것이다.

특히 농경을 짓고 살던 남쪽 평야지역에서 서역의 그리고 북방초원에서나 있을 명마의 산지가 있다는 것은 서쪽에서 온 신라와 가야 김씨 일족이 흉노왕자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씨 일족에 의한 생명공학 기술은 비밀리에 혈족으로만 비법이 전수되었다.

절영마는 중리일원의 왕의 정원에서 관리되던 왕실말로서 특정계층 이외에는 역참을 사용할 수 없기에 필히 정부에서 발행하는 마패를 발급받아야 한다. 마패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급제를 하여 관직을 하사받아야 하는데, 관직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중차대한 사항이 아니고서는 마패가 발급되지 않기에 현재로는 제약적인 것이 많고, 일반에게는 유명무실하다.

역참은 신라 소지왕 487년 3월에 ‘우역’이라하여 사방에 소관 관아를 통제할 수 있도록 통신소를 설치하여 역참의 기능을 수행하였는데, 말이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하지만 실제 마패를 이용된 것으로 고려 원종15년 이후부터 이다.
다섯 번째, 절영도원으로 가기 위한 방법은 오롯이 하늘로 향할 필요는 없다. 바다의 시간인 물때가 맞으면 바다 속의 영물인 군소가 용궁 밖으로 나오기에 군소를 타고 용궁으로 갈 수 있다.

군소는 천상의 팔준마가 마시는 신령스러운 물이 있는 감지(甘池)를 통해 용궁 밖으로 나오는데, 감지해변은 해수와 담수가 이어져 있는 곳이다.

용궁은 천상의 절영도원과 이어져 있는 천상천하(天上天下)의 일체, 즉 그림자이기에 결국 군소를 타고 절영도원으로 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해와 절영도원, 그리고 봉래산(절영산)이 동일한 선상이 되어 그림자가 사라지는 시기에만 가능하기에 천상과 지상의 시간, 용궁의 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결국 신령스런 못(영지, 靈池)이자 그림자 못(영지, 影池)인 감지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보일 때가 용궁의 문이 열리는 때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군소는 “간을 빼주고 용궁에 눌러앉은, 바다의 토끼”라고 알려져 있기에 과거 거북이와의 경주에서처럼 군소가 낮잠을 잘 수 있으니 군소를 잘 독려해야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소가 좋아하는 동삼동의 특산 곰피를 미리 채취하여 졸음이 오는 군소에게 적절히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군소가 생각보다 작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 밖에서는 크기가 작아 보일지 몰라도 물속에서 크게 부풀어 집채만 하게 변할 수 있기에 너덧의 성인이 충분히 타고도 남는다고 한다.

군소를 타기 전 명심해야 할 것은 조개화폐가 있어야 하는데, 조개화폐를 구하려면 동삼동에서 재배중인 나라꽃(국화, 國花)을 구해, 오래된 남방불교의 고찰인 태종사에서 물속 신령한 꽃인 수국(水國)으로 교환해야 한다. 그리고 태종수 수국으로 조개화폐로 환전하면 된다.
그림 12. 중리해변의 참군소
그림 13. 중리해변에서 채취한 곰피(부분)

거창하게 나를 ‘작가’로 칭하기는 부끄럽고 오히려 ‘선생’이란 호칭이 편하다. 해서 작가들이 느끼는 찰나의 감동과 번뜩이는 아이디어 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좀 더 고민하고 집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원’이라는 실제적 요체이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정원보다 허공의 상상의 정원을 정원사적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하였다. 이는 영도라는 장소가 가진 유무형의 이야기들이 다양한 정원사적 상상력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사의 정원은 끝이 없다고 한다. 행복한 미래의 정원을 상상하며 늘 가꾸고, 새로운 식물을 보태며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늘 2%가 부족한 듯,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든(garden)에 내재된 의미처럼 무엇인가 둘러있어 보호받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약소한 행복이지만, 신기루처럼 보이지 않는 모호한 행복일 수 있다. 좀 더 친숙한 예로 우리가 여행을 가려할 때 여행지에 도착하며 느끼는 감동보다 여행을 채비하며 느껴지는 상상의 여행이 더욱 행복하고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여행의 묘미와 감동은 정원의 묘미는 별반 다르지 않다.

정원을 제3의 자연이라고 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자연이 곧 문화이다. 인문적인 상상력이 정원이라는 이상을 통해 더욱 가치를 발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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