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리서치 플레이스랩 프로젝트 영도
미워하다 좋아진 싫어하다 사랑하게 된 섬. 이것은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옛 길 위에서 본 섬의 시간. ‘노이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존재들. 그들이 섬 밖으로 나간 것을 보지 못했다. 바다에 닿지도 않았는데 바다를 닮은 구석. 정작 남아 있는 건 없다. 한 걸음 물러난다는 마음으로. 그림자가 끊어진다. 목적지가 있다면 쉬는 것은 멈춘 것이 아닙니다. 소소하고 시시하더라도 나는 늑대이지 말아야지. 경계는 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살던 그곳이 더이상 그곳이 아니게 되는 것.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김성완

CAT 조경설계사무소 대표,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겸임교수. 의문이 많은 경관설계가.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좋은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비롯된 환상을 제거하는 것에 있다.’를 삶의 태도에 반영시키며 살고 있다. 영도를 대상지로 역사적 자산으로서 경관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김용희

CAT 조경설계사무소 소장. 주변의 모든 현상에 관심이 많다. 주변과 자연 관찰을 기본자세로 현상파악가가 되고자 한다. 뒤늦게 역사, 과학, 우주에 깊이 빠졌지만 설계일이 바빠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공간작법을 연구한 바 있다.


* 최근 CAT 조경설계사무소는 동아대학교 강영조 교수와 함께 영도 근대 역사 흔적지도 및 안내책자, 전시관 리모델링 등으로 2020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영도의 오래된 길은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길은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며, 현재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과거에 사라진 길과 현재도 남아있는 길이 남긴 흔적은 영도만의 정체성을 지녔다. 이것은 영도 지역주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동시에 다양한 상상의 원천이 된다. 오래된 옛길은 경관 체험의 전승이자 역사적 기억이며 인류의 기록이다. 영도 100년 길은 시간이 남긴 영도의 유무형 자산을 내포한다. 현재는 당시의 풍경도 사람도 만날 수 없지만 길만은 그대로다.

이것은 오래된 길 위에서 영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옛길 위에서 본 영도의 시간

1. 영도 100년 옛길
영도의 오래된 길은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길은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며, 현재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과거에 사라진 길과 현재도 남아있는 길이 남긴 흔적은 영도만의 정체성을 지녔다. 이것은 영도 지역주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동시에 다양한 상상의 원천이 된다.
오래된 옛길은 경관 체험의 전승이자 역사적 기억이며 인류의 기록이다. 영도 100년 길은 시간이 남긴 영도의 유무형 자산을 내포한다.
2. 100년 전 어느 영도인의 짧은 여정
1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약 1km 여정의 영도 옛길을 함께 걸어보자.

영도 북서쪽 평야지대에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한 마을이 있다. 이곳은 수림 사이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가옥들, 광천수가 있는 우물, 둠벙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주변으로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경작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을 앞 삼거리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어망공장(福鳥撚系工場)이 있는데, 이 삼거리에서 출발해 봉래산을 등지고 북쪽으로 나 있는 신작로를 걸어가 보자.

200미터쯤 걸어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난 신작로를 중심으로 시라이시, 아와모리 제염소와 굴뚝 연기, 우편소와 극장, 파출소 등이 있는 길게 쭉 뻗은 시가지가 보인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100미터쯤 걸어가면 살마굴(薩摩堀)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우측에 보이는 스탠다드 석유회사창고를 지나면 주갑(洲岬) 시가지 골목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 주변으로는 코노미, 아라이 제염소 등 공장들,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 신작로 주변으로 연결된 여러 골목들 마다 들어선 각종의 상점들, 유곽들, 식당들이 보인다. 신사와 파출소가 있는, 그리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 사거리를 지나 약 200미터쯤 더 걸어서 나카무라 조선소와 스즈키 제염소 사이를 빠져나오면 막다른 길에 도달한다. 이 막다른 길 끝에는 부산항과 용두산, 그리고 바다가 펼쳐져 있다.

옛 지도만을 이용한 이 짧은 여정으로 100년 전 근대 시기 영도 대평동 일대의 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 여정에 사용된 지도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1919년 측도하고, 1924년 발행한 영도 지형도이다.

이 여정의 현재 경관시퀀스는, 영도 어린이 영어도서관 부근 절영로에서 출발해서 영도 전차종점기념비가 있는 남항사거리에서 대평로를 따라 직진하면, 깡깡이마을박물관과 영도문화도시센터 부근을 지나게 되고, 이어 양다방 앞 사거리와 조선소 지구를 빠져나오면 부산항과 용두산, 바다경관이 펼쳐진 막다른 길을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현재는 당시의 풍경도 사람도 만날 수 없지만, 길만은 그대로다.
3. 길을 잃다
길이 사라지는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역사적 자산으로서 경관에 관한 연구」(2019) 에 따르면, 길이 사라지는 원인을 도로정비, 건물축조, 굴착매립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봉래동의 오래된 길 위에 공동주택 단지가 개발되고 있었다. 도시의 개발과 오래된 유산을 함께 가져가는 다양한 방안은 도시 재생이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모색되고 있기도 하다.

오래된 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민간 개발이 얽힌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된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계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계획을 유산보존에 초점을 둘 수는 없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오래된 유산을 활용해 멋진 공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옛길을 활용한 작은 정원 같은 것 말이다. 작은 공간이라도 오래된 유산에 할애를 한다면, 100년 된 옛길 정원이 있는 아파트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4. 다리를 건너서 갔던 깡깡이 마을

영도 살마굴교 인근 문절망둑(부산지역어 : 꼬시래기) 낚시 장면
자료 : 1916년 07월 06일자 부산일보
주갑(洲岬)으로 불리던 시절의 깡깡이 마을은 살마굴(薩摩堀)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들어갈 수 있었다. 다리는 현 남항사거리에서 남항서로를 가로질러 대평동으로 가는 구간에 약 30m 길이로 옛 지도상에 표현되어 있다. 당시 영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영도다리에 관한 기록은 많지만, 이곳의 살마굴교(薩摩堀橋)에 관한 것은 많지 않다.

영도의 주요 번화가였던 곳을 이어주는 다리의 존재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5. 물 위의 땅
1919년 당시 영도의 물길

100년 전 영도에는 다양한 물길이 존재했다. 봉래산 산자락을 타고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계곡, 마을 사이로 흐르는 작은 실개천, 그리고 둠벙, 우물, 광천지, 해수로 등을 옛 지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현재는 복개 등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1919년 당시 영도의 물길_현재 수치지형도에 중첩

흰여울 마을에는 100년의 바다경관을 지키고 있는 바닷가 길이 있다. 그러나 근대시기 수차례의 매축공사를 거치며 영도 일부 지역은 바다경관을 잃었다. 당시 존재했던 물의 흔적을 돌아볼 가치가 있다.
청학동의 한 유명한 칼국숫집은 왕복 4차선의 해양로 도로가에 위치하고 있다. 맞은편에 각종 근린생활시설과 부두시설이 보이는 위치이다.

1916년에 측도 된 지도에 의하면 이 칼국숫집 바로 앞은 바다였다. 현재와 같이 매립되기 전에는 현 해양로를 중심으로 구불거리는 해안이 형성되어 있어 내륙으로 파도가 들이치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청학시장(태종로 318번 길)은 바닷가로 곧장 다다르는 길이었고, 이 일대에는 경작지로 둘러싸인 바닷가 마을이 있었다.

이곳이 바닷가였음을 알려주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면, 보행자에게 영도 바닷가의 옛 풍경을 상상하며 걷는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6. 붉은 굴뚝의 잔상


얼마 남지 않은 영도의 근대 유형자산 중 하나가 2020년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재제염을 생산했던 코노미(許斐) 제염소의 봉래동 사업장 안의 굴뚝이 그것이다. 물류창고로 이용되는 사유지에 이 굴뚝이 남아있었으나, 현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철거되어 있다.

영도의 근대유산이 한창 조명 받는 시기에 아무런 손 쓸 틈 없이 철거되었다는 점이 근대유산과 오래된 경관을 바라보는 이에게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7. 경관유산의 시퀀스적 체험 1 : 막다른 길
영도에는 막다른 길들이 있다. 걷다 보면 바다에 다다르는 형태로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구조의 길이다. 대평동 대평남로 51번 길은 직선으로 바다를 향해 뻗어있어 그 길의 끝에 다다르기 전 저 멀리서부터 바다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이 길의 서쪽 끝에는 간이 선착장이 있다. 직선으로 뻗은 길 끝에 다가갈수록 시야 속 해수면의 영역이 넓어진다. 길 끝에 도달한 후 탁 트인 바다 풍경을 맞닥뜨리는 순간, 영도가 섬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린다.

막다른 길에서 부산항 바다 경관을 획득하고 체험하는 방식은 100년 이상 이어져 온 것으로, 영도의 근현대사가 남긴 경관 유산이다.
대평동 대평로 역시 걷다 보면 바다에 다다르게 되는 100년 된 막다른 길이다. 이 길의 끝에 서면 부산항과 용두산, 자갈치 등 부산 원도심의 명물들이 한눈에 보인다. 부산의 대표 경관을 한눈에 획득할 수 있는 영도만이 가진 조망 명당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 길 끝의 경관구조는 어떤 형태여야 할까. 부산항 경관을 보다 쾌적하게 체험하기 위해서는 길 끝에 놓일 구조물에 대해서 좀 더 구조적/공간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길 끝에서 체험하는 자연문화경관의 보전 가치와 문화도시 인프라 제공 가치 사이의 올바른 균형이 필요하다.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경관의 지속 가능한 가치 보전을 위해서 말이다.
대평로 막다른 길 끝에서 체험하는 부산 원도심의 2021년도 경관
8. 경관유산의 시퀀스적 체험 2 : 길 위의 바다
신선동 하나길(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 뒷길)에서 시작해서 흰여울 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길 위로 바다가 떠오르는 경관을 체험할 수 있다. 흰여울 마을 앞 묘박지에 정박한 선박이 바다와 함께 떠오르다 길 위에 살짝 놓이기도 한다.

이 역시 영도 100년 길 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관 시퀀스로, 100년 동안 유지되어 온 영도민만의 경관 자산이다.
9. 사라진 길. 남겨진 정원
남쪽 바닷가 기와 공장에서 경작지를 따라 영도 중심가로 이어지던 길은 1943년의 지도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2021년 찾아간 사라진 옛길에는 벽돌로 만들어진 오래된 축대와 초록빛 수직정원이 비밀의 정원처럼 남아 있었다. (남항동 이천평 주차장 석축)

또 다른 어딘가 사람의 발길이 사라진 곳에 선물 같은 비밀의 정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직정원을 메우고 있는 식물은 영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깨비쇠고비이다. 양치식물 고사리목 면마과인 이 식물은 해안가 바위틈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도깨비쇠고비는 봉의꼬리와 함께 석축과 계단이 유난히 많은 영도의 도시구조에 잘 적응한 대표적인 식물이다.
봉의꼬리와 어린 도깨비쇠고비
봉의꼬리(사진 중앙의 길쭉한 잎)
도깨비쇠고비(바위틈 넓고 밝은 잎)
10. 영도 바다 경관을 즐기는 9가지 방법
영도는 자치구 전체가 섬으로, 다양한 지형적 특성을 가진다. 봉래산, 중리산, 태종산, 아치산 등의 산지, 그 산허리까지 올라서는 경사형 주택지, 그리고 남항동 일대와 매립지를 중심으로 한 평지형 시가지 등 지형구조적으로 다양한 도시맥락을 가진다.

영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생성되어온 길과, 그 길 위에서 영도 주변을 둘러싼 바다 경관을 바라보는 행위는 영도지역만의 것이다. 영도 100년의 길과, 그 길 위에서 체득하는 경관 체험은 영도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역 자산인 것이다.

영도에는 바다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아홉 가지 방법이 있다. 길이 놓여있는 지형의 특성에 따라 경관을 획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영도의 길과 시선은 지형적으로 크게 네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다를 향해 접근할 수 있는 경사형과 평지형, 해안선과 평행하게 이동하는 전망형, 바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전환형이 그것이다. 이것을 길의 형태에 따른 경관구조에 따라 다시 세분하면, 경사형은 산등성이 길/골짜기 길/비탈 길, 평지형은 평지길/막다른 길, 전망형은 바닷가를 따라가는 길/자드락길, 전환형은 모롱이 길/언덕길 등 총 아홉 가지로 나뉜다.

A 바다를 내려다보는 산등성이 길
B 바다를 내려다보는 골짜기 길
C 바다를 내려다보는 비탈 길
D 부산항으로 다가서는 평지길
E 부산항에 다다르는 막다른 길
F 바닷가를 따라가는 길
G 바다와 나란한 자드락길
H 바다가 펼쳐지는 모롱이길
I 바다가 펼쳐지는 언덕길

이것은 영도 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의 구조를 결정한다.
영도는 섬이다. 영도 어디에서나 쉽게 바다 경관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영도의 시기별 해안선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영도는 일제강점기와 근대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도시변화를 겪어왔다. 도시문화경관적 측면에서 영도 바다경관을 즐겨보자.
영도 바다경관을 즐기는 아홉 가지 방법이 담긴 영도 100년 길 지도.

이 지도를 통해 영도 어딘가에서 100년 동안 축적된 영도지역만의 시공간 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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