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리서치 플레이스랩 프로젝트 영도
미워하다 좋아진 싫어하다 사랑하게 된 섬. 이것은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옛 길 위에서 본 섬의 시간. ‘노이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존재들. 그들이 섬 밖으로 나간 것을 보지 못했다. 바다에 닿지도 않았는데 바다를 닮은 구석. 정작 남아 있는 건 없다. 한 걸음 물러난다는 마음으로. 그림자가 끊어진다. 목적지가 있다면 쉬는 것은 멈춘 것이 아닙니다. 소소하고 시시하더라도 나는 늑대이지 말아야지. 경계는 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살던 그곳이 더이상 그곳이 아니게 되는 것.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문창현

다큐멘터리창작공동체 오지필름에서 씨네액티비스트로 활동중이다. 사람에게서 삶을 배울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나를 담아 낼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춤추는 걸 좋아한다. 요즘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다큐멘터리로 밥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기억과 기록사이

부산에서 다큐멘터리 창작활동을 시작했던 2011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한창이었던 그때 나는 카메라를 들고 처음 영도를 찾았다. 파란색 작업복의 물결이 봉래동을 가득 채우고, 전국각지에서 모인 연대자들 틈에서 카메라를 들고 85크레인을 올려다보며, 노동자들의 이야기들 들었다. 뷰파인더 너머로 목격한 벅찼던 순간들, 길에서 쪽잠을 청하고, 경찰들과 대치하면서 이렇게 세상을 알아가는 거라고 느꼈다. 2011년 11월 10일, 해고노동자였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의 고공농성을 끝내고 땅을 밟았던 그 날 이후 나는 거의 9년 만에 영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영도를 자세히 만난 건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영도의 지도였다. 지도상 동삼동 중리 일대의 선은 마치 왕관을 길게 눌러쓴 여성의 옆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흥미로웠다. 봉래산의 산신이라 불리는 영도할매 전설이 머릿속을 맴돌아 “내가 만약 영도를 살다가 이사를 가게 되면 정말 밤에 떠나야할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영도가 참으로 여성의 이야기로 가득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재밌는 상상들이 머릿속을 채울 무렵, 조선업이 한창이 던 영도의 어느 시절, 배 밑창에 붙은 조개껍데기나 녹을 망치로 떼어냈던 대평동 깡깡이아지매들이 이제는 뱃고동 소리가 잠잠해진 영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30년 투쟁의 흔적을 아픈 몸으로 말하고 있는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투병소식을 듣고 10년 전의 영도와 지금의 영도이야기를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기억의 조각처럼 파편화되어 있는 영도의 해녀들의 삶이 궁금했다. 나는 그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 따라, 숨비소리(고승여&김영호)_문창현 감독
삶 따라, 숨비소리(이금숙)_문창현 감독
삶 따라, 숨비소리(우경선)_문창현 감독
삶 따라, 숨비소리(홍춘화)_문창현 감독
삶 따라, 숨비소리(최동식)_문창현 감독
삶따라, 숨비소리

대평동 깡깡이 마을을 한참 둘러보고 거대한 배의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어디서부터 영도를 들여다 봐야할까 복잡한 머리를 붙잡고, 동삼동 중리해녀촌에 도착한 그 때 나는 인생처음으로 숨비소리를 들었다. 새소리를 연상케 하는 청아한 소리가 해녀촌을 가득 채웠고, 나는 본능적으로 해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해녀의 존재만큼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 본 적이 없던 나는 해녀라는 존재가 내게 기억의 파편처럼 조각나 있는 느낌이었고, 이 조각들을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하나 맞춰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렇게 시작된 <삶따라, 숨비소리>는 영도 중리 해녀촌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 6명의 이야기다.

중리 해녀촌 대부분의 해녀들이 제주도 출향해녀들이고 인터뷰 한 6명 중 한 명만이 부산에서 나고 자라 해녀가 되었다. 해녀들 대부분이 15세 전후로 물질을 배웠고, 결혼과 함께 제주를 떠나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먹고 살기위해 물질을 업으로 시작했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내게 파편화 된 해녀의 존재를 조금은 맞춰주길 바랐다. 특별한 듯 평범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엄마,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영도에는 현재 130여명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으며, 그녀들의 평균나이는 70대, 매년 그 수는 줄고 있다. 삶 따라, 숨비소리를 내어왔던 그녀의 기억들이 기록으로 오래오래 전해지길 바란다.

*바쁜 와중에도 불쑥 들이민 카메라를 거부하지 않으셨던 해녀어머니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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