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리서치 플레이스랩 프로젝트 영도
미워하다 좋아진 싫어하다 사랑하게 된 섬. 이것은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옛 길 위에서 본 섬의 시간. ‘노이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존재들. 그들이 섬 밖으로 나간 것을 보지 못했다. 바다에 닿지도 않았는데 바다를 닮은 구석. 정작 남아 있는 건 없다. 한 걸음 물러난다는 마음으로. 그림자가 끊어진다. 목적지가 있다면 쉬는 것은 멈춘 것이 아닙니다. 소소하고 시시하더라도 나는 늑대이지 말아야지. 경계는 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살던 그곳이 더이상 그곳이 아니게 되는 것.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구민자

구민자는 일상적 행동과 그에서 기인하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사적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사진, 영상,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작업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쌈지스페이스 스튜디오 프로그램과 바르셀로나 앙가르 레지던시, 뉴욕의 ISCP 등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2010년에는 송은 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벨기에 겐트에 위치한 HISK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개인전으로 2009년 <Identical Times : 스페이스 크로프트>, 2011년 <대서양 태평양 상사: 무어 스트리트 마켓> 등, 그룹전으로는 <08타이페이 비엔날레: 타이페이 시립미술관>, <Now What; 공간 해밀톤>, <VIDEO:VIDE &O ;아르코 미술관>, <Trading Future; Taipei Contemporary Art Center> ,<세탁기장식장: 서대문구 재활용센터>,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 APAP 2010 /오동팀 안양, APAP 2014>, <젊은 모색 2013 : 국립현대미술관>, <The Part In The Story : Witte de With> 에 참여했고, 2018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선정되어 전시에 참여했다.

영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유명한 관광지인 태종대가 부산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도에 있는 줄은 몰랐고, 한진 중공업과 김진숙씨에 대해서는 기사도 찾아보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영도에 있는 줄은 몰랐다. 영도에 몇 차례 방문하면서 전반적인 인상으로 다가왔던 것은 뭔가가 엄청 많다는 것이었고, 이후 하나하나 보면서는 이 작은 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산의 다른 곳들은 어떨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대도시의 한 지역으로서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나 한 곳에 너무나 다양한 것들이 모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따라온다. 작은 섬, 작은 산을 가릴 정도로 고층 아파트들을 만들어낼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을까. 이로 인해 영도를 배회하며 하나하나 보다보면, 아직 못 본 것들이 점점 궁금해진다.

‘배송’ 에 특화된 목공소

목공소 거리가 있다는 지도의 표시를 따라 간 곳의 목공소는 일반 목공소와는 달랐다. 쌓여있는 나무 제품들은 운송에 사용될 나무상자들이었다. 아무래도 항구 도시이다 보니 선적을 위한 나무 상자를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산업일 것이며, 영도 이외 부산의 타지역, 혹은 인천과 같은 장소에는 이러한 목공소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이외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매우 독특한 것으로 보이며 그 쌓아놓은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 중 하나이다. 사방을 단단하고 두꺼운 각목으로 댄, 심지어 가구 같은,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고 튼튼한 상자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상자부터 딱 맞게 포장의 공정 하나 하나를 거쳐 꽉 들어간 물건까지를 분해 도면처럼 떠올려보기도 했다. 물건이 무엇이든 간에.
임의적 조각물

특정한 이유로 쓰임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혹은 그 남은 잔재들을 조각물이라 불러보자. 그물 가게 앞과 주변에 독특하고 다양한 색감의 그물들이 쌓여있다. 한진 중공업 앞에는 김진숙위원을 지지하기 위해 줄에 매달렸던 바람 빠진 풍선. 해녀 마을 바닷가의 바위들에 밧줄이나 깨진 유리 등을 작은 시멘트 덩이를 이용해 부착해 둔 수많은 것들, 자갈마당 해녀들이 만들고 사용하는 천막과 낮은 상들, 바위 사이로 놓인 엉성하게 만든 간이 다리들, 자갈 해변 어디를 가도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들 등등. 대부분은 쓸모를 위해 누군가 만든 것들이지만 영도의 특징들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보고’, ‘줍고’, ‘찾아내고’, ‘바라보고’, ‘놓아보는 일

태종대 가는 길의 대로에는 십여 개의 수석 가게가 줄지어있다. 십 오년 전쯤까지만 해도 두 배 이상의 수석 전문점이 있었다고 한다. 돌을 찾아내고, 줍고, 좌대를 만들고, 특정 장소에 진열해두고 바라보는 이유는 아마도 미니어쳐 자연을 가까이 둔다거나, 특이한 모양에의 취미, 수집 욕구 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태종대는 수석 수집가들에게는 유명한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80년대 90년대에 유행했을 수석의 취미는 갔지만 여전히 돌은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다른 것들은 어떠할 수 있을까. 해변에 밀려온 노끈이나 돌처럼 닳아버린 유리 조각이나 스티로폼 조각과 벽돌조각,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말라버린 해초류나 각종 쓰레기 조각들. 그러한 물건들을 깨끗이 닦고, 좌대를 만들고, 아름다운 선반이나 테이블에 빼곡하게 진열해 둔 가게를 상상해보게 한다. 물론 돌도 포함되어있을 것 같다. 매일 먼지를 털고 윤을 내는 가게의 사장님도.
0.7인분의 스케일, 혹은 웅크린 집

흰여울 문화마을과 해돋이 마을의 집 다수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전형적 크기를 벗어나있다. 전쟁 후 모여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지어졌다고 하니 서울의 낙산이나 창신동 등 언덕의 집, 골목들과 흡사하다.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 빈 집들의 내부나,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의 크기, 방의 크기, 대문의 크기는 좁고, 짧고, 담은 낮으며 바짝 붙어있다. 생활을 위한 적절한 크기란 어느 정도일까. 240cm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짓는 요즘의 집들과 다르게 소위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흔한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익숙지 않은 스케일을 생각하다보면 옛 한옥의 작은 방들의 크기나 문, 창문의 크기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당시 사람들의 크기에 대한 감각 등), 피난민들이 겨우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좁은 땅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와는 별개로 어째서 ‘오래된 마을’, ‘좁은 골목’, ‘허름함’, ‘불규칙함’, ‘아귀가 맞지 않는’ 것들은 관광의, 관광화의 대상이 되는가. 본인의 집은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지만, 막상 이러한 구조의 집들과 형태는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나. 굳이 색색깔의 페인트를 칠하고, 획일화된 감성의 까페와 박물관과 옷가게와 서점이 생겨날까. 영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영도와 ‘그림자들의 섬’

‘그림자들의 섬’은 영도 한국 조선공사/ 한진 중공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에 대한 다큐이다. 영화를 보진 못했고, 대략 이런 내용이다 정도만 알고 있다. 그 동안의 기사만 검색해도 어마어마하다. 거대한 배를 만들기 위해 높이 올라가는 자그마한 사람들, 고공 크레인에 올라갔던 사람들. 어째서 상황이 변하지 않을까. 어째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당하게 결정하는가. 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상황에 대해 외면하는가. 소위 자본의 횡포는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게 인생에서 겪는 일이지만, 어째서 나의 일이 아니라고, 나의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무엇일까. 우리가 더 많아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한 영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주민들이 만들어간 동네의 또 다른 이주민들

요즘 방영하고 있는 ‘윤스테이’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오래되고 잘 지어진 고풍스런 한옥(아마도 한옥게스트하우스?) 에서 머무르며 한식을 먹으며, 소위 진짜 한국의 정취를 경험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좋은 기관에 유학생 혹은 연수생의 신분이거나, 선생님, 의사, 외국 회사의 중역 등이다. ‘외국인 노동자’ 혹은 ‘결혼 이주민들’은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일견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아주 대다수의 한국 이주, 혹은 거주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소위 ‘이주민 노동자’는 ‘러브 인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국에서 고생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있다. 이런 예능에서는 전문직 노동자들이나 유학생들만 등장한다. TV 프로그램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러한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재현의 태도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외국 인식과도 동일하다.

영도 고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도의 상징과도 같다는 깡깡이 아지매들을 대신해 다수를 차지한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고,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떠한 장소적 경험을 하고 있을까. 또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 곳의 결혼 이주민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 삶의 공간에, 주변 분위기에 스며들고 있으며, 어떤 경험들을 할 기회가 주어지고 만들어갈 수 있는 상황일까.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는 선택의 가능성조차 제한된 영도의 새로운 이주민들을 위한(혹은 한국의 이주민들) 가능성은 어떻게 열어 젖혀지며 드러나고,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영도와 Russky Island (부산과 자매도시인 블라디보스톡에 연결된 루스키 섬과 부산에 연결된 영도)

몇 년 전, 블라디보스톡 방문 당시, 그 도시의 어떤 모습들이 나의 아주 단편적인 부산에 대한 인상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근처에서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집들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도 그런 풍경을 본 적이 있지만 부산이 떠오른 이유는 아마 바다 풍경과 함께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한 귀퉁이에 부산과 자매도시라는 표지석(인지 표지판인지)이 있어서 실제 자매도시 결연이라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와는 별개로 신기해했다.

당시는 영도에 대해서는 몰랐고, Russky Island도 우연히 가게 되었었다. 다리로 연결되어있어 배를 타고 갈 필요는 없었다. 군사적 요지로 사용되었던 적이 있어 작은 벙커 같아 보이는 돌로 쌓은 구조물들도 보였고,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사는 사람들이 피크닉처럼 놀러 방문하는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자갈 해변과 절벽이 유명하다고 했다. 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라는 대학도 있었다. 이 대학의 존재는 이 섬을 러시아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영도에는 해양대학이 있다) 이런 점들이 영도를 다니는 동안 떠올랐다.

비슷한 점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외부에서 배로 접근한다고 생각했을 때 각 섬을 만나는(접근하는) 방식이나 지형학적 구조 역시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차이에 대해서도 명확한데, 러스키 아일랜드는 인구 밀집 지역이 아니고, 도로 조성 이외에는 손대지 않은 듯 보이는 장소였고, 해안 절벽, 자갈 해변 가는 길에는 한국 해변 가는 길에 주로 보이는 음식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돌을 쌓아놓은 흔적이라거나, 어설프게 지은 천막 구조물(물론 용도는 해녀들의 식당과는 다르다), 해안절벽의 분위기 등에서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스키 아일랜드와는 다르게 영도는 어떤 이유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된 것일 까. 왜 러스키 아일랜드는 거의 섬 그대로 휑하게 남아있을까. (추측은, 블라디보스톡 자체도 그다지 인구 밀집 지역이 아니고,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에서의 위상(?)이 한국에서 부산의 위치와는 다르다는 것, 그냥 단순히 러시아와 한국을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영도의 해변과 돌
러스키 아일랜드의 해변과 돌 (2018년 방문시 촬영)
마지막으로. 더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기

- 영도에서는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덜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굳이 박물관 기념관을 남기는 것이 아닌. 해양 박물관은 국립이니 만큼 규모도 크지만 그 내용 역시도 흥미로우며, 새로운 내용이나 시선을 보여주기 위한 특별 기획전도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외의 세 박물관(고구마 박물관, 패총 박물관, 해녀 박물관) 역시 방문해보았는데, 예산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 전시품이나 내용이 예산 핑계만으로는 얘기 되지 않을 정도로, 전문가의 손길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아쉬웠다. 왜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식은 박물관을 짓는 것으로 귀결될까. 이왕 만든다면 어째서 잘 만들지 못할까.

- 변화 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어떠한 영도를 투사해볼 것인가. 실제로 영도에 살고있는, 살아갈 사람들은 어떤 것을 꿈꿀까. 역시 영도만의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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